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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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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TFS 댓글 0건 조회 8,213회 작성일 09-09-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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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테니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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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경기의 원류를 추적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구구한 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 이와 비슷한 경기를 했으며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즐겼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11세기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왕후 귀족과 사원의 승려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던 볼 게임의 일종으로 손바닥으로 공을 치는 라 뽐므(La Paum)란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며 이 경기의  발생시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된 경기 방식은 볼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볼을 치는 경기라는 것이다.

또한 12세기초부터 16세기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이 경기는 12세기 프랑스  수도원에서 고안되었다고 하며 쥬 드 폼므(Jew de Paume)(구희(球戱)관)이라고 불렀다. 폼므란 프랑스어로 손바닥을 말하며 이것이 13세기 경 프랑스 귀족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쥬 드 폼므라는 손바닥 게임으로 발전했다. 쥬 드 폼므는 털이나 천을  채워 둥글게 만든 공을 맨손이나 장갑을 끼고 손바닥으로 때리던 경기로써, 코트의 중앙에 만든 경계 벽을 넘어서 반대쪽 3방향의 벽 어디에든지 손바닥으로 공을 쳐 넣으면 상대방은 이 공을 직접 또는 한 번 바운드 된 공을 손바닥으로 다시 쳐서 넘기는 경기였다.

이러한  쥬 드 폼므 경기가 테니스라고 불리게 된 것은 볼을 치라고 하는 테네(tennez)라고 하는 발음에서 1360년경 영국인들이 자기 나라에 테니스라고 하는 명칭으로 조어하여 소개할 때부터라고 한다.

이 경기는 왕후귀족과 승려들이 가장 애호한  스포츠 중 하나이며 중세 유럽에서는  중요한 경기 중 하나였다. 쥬 드 폼므는 수도원의 정원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코트의 구조와 복잡한 룰, 그리고 볼을 만드는  사람을 왕후귀족이 고용한 것 등을 볼  때 이 게임은 왕후귀족의 전유물로 삼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14세기 경에는  신흥 세력인 도시 귀족들도 쥬 드 폼므 경기에 열중하기 시작하여 각 도시에도 많은 구희(球戱)관이 세워짐으로써 점차 대중화되어 갔으며 대학생들도 애호하게 되어 중세 유럽의 대학 도시에는  필수적으로 이 구희관이 세워졌다고 한다.

쥬 드 폼므는 손바닥으로 볼을 되받아치는 경기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너무 손이 아파 장갑을 끼고 경기를 하던 중 손 대신에 다른 타구 도구를 찾게 되었으며 15세기 후반에  라켓을 고안하여 16세기 경에는 라켓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경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스포츠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1596년 파리의 인구 30만명에 코트는 250개가 있었다고 한다.

쥬 드 폼므는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있었지만 도박을 즐기는 것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일 파운드의 내기 돈을 지불하거나 도박 등으로도 이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기는 17세기경 계몽주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급속하게 쇠퇴하여 일부 애호가들에 의해 겨우 전승되어 왔으며 폐쇄된 구희관은 점차 극장으로 개장되어 계몽주의 시대의 연극 붐에 공헌하게 되었다.

또한 12세기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수도원 정원에서 탄생하였다고 하는 쥬 드 폼므 경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이 있다. 즉, 이 게임이 수도원에서 고안되었다고 하여도 그 이후의 역사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손바닥으로 볼을 치는 게임은 북프랑스 만이 아닌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바스크 지방(피레네 산맥 남북 프랑스, 스페인에 걸친 지역)에서도  옛날부터 행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관계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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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쥬 드 폼므 경기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생성, 발전을 이뤄  곧 「론 테니스」로 전환하고 있었다고 하는 속설이 통용되고 있지만 정설은 아니다. 여하튼 테니스의 정식 명칭은 론테니스라고  하며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경기로는 크리켓이 있었으나 넓은 저택의 잔디밭에서 할 수 있는 활동적인 스포츠를 원했다. 이 소망은 1873년 인도 주재군의 소령이었던 영국 사람 윙필드(W. Wingfield) 소령에 의하여 급성장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대영제국의 중산층들은 늘어나는 여가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1874년 윙필드는 일정한 코트와 네트를 만들었으며 1875년에는 메릴리본 크리켓 클럽(Marylebone Cricket  Club)에서 규칙을 통일함으로써 근대 스포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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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877년에는 제 1회 영국 선수권 대회가 윔블던에서 열려 지금까지도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이어져오고 있다. 1896년 제 1회 아테네 올림픽 대회에서 정식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나, 프로 선수의 참가가 문제가 되어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대회부터 경기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 64년 만에 다시 정식 경기 종목으로 부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출처: 월간 테니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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