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아들에게 다짐을 한다.
"이놈아, 다음에도 꼴등하면 부자지간을 정리하자꾸나."
그리곤 한달 후 아들은 시험을 쳤다.
"요번엔 잘 봤냐?"
"근데 아저씬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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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끼리 유행하는 이 우스갯소리의 유쾌함은 끊을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논리적으로 끊어지는 데에 있다.
자식을 잘 키워보겠다는 아버지의 애틋한 심정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아들은 많지 않다.
반대로 자기도 똑같은 시절을 겪었을 텐데
도무지 아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도 많다.
그래서 적의가 생기고 충돌이 벌어진다.
둘의 진정한 화해는 아들이 아버지가 된 뒤에야 이뤄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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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흥청망청 돈을 써대던 서울의 대학생 아들에게
사람 만들어 보겠다며 시골 아버지가 꼬박꼬박 부치던 용돈을 끊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전보를 쳤다.
"당신 아들, 굶어 죽음."
아버지의 답전은 이랬다.
"그래, 굶어 죽어라."
분노한 아들은 아버지와 인연을 끊었다. 연락도 끊었다.
아들은 이를 악물고 일을 했다.
세월이 흘러 결혼하고 자식을 낳은 아들은
'굶어 죽으라'는 아버지의 전보가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됐음을 깨닫는다.
그 해 추석, 고향집을 찾았더니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유서 한 장이 있었다.
"아들아, 너를 기다리다 먼저 간다.
너를 한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네가 소식을 끊은 뒤 하루도 고통스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내가 보낸 전보는 네 인생의 분발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너를 사랑했다."
(2004. 8. 19 일자. 중앙일보 분수대 - 아버지 중 일부분)